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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동력 요트로 지구를 누빈 해양탐험가, 김승진 선장을 만나다

STORY/Passion 피플



“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지구가 둥근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보고 느낀다는 것은 분명 달라요. 그 감동은 그 길을 선택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어요.” 209일이라는 긴 모험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승진 선장은 감탄사로 답을 대신합니다.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잘나가던 다큐멘터리 PD가 목숨을 건 바다 모험가가 되었습니다. 은퇴 후 편안한 삶을 기대해도 좋을 50세를 훌쩍 넘겨 그의 모험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바다만큼 다이내믹한 그의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무동력, 무기항, 무원조… 김승진의 세일링은 시작일 뿐




 

 

“안녕하세요.

저는 국내 최초로 무동력 세계일주를 다녀온 해양 모험가 김승진 선장입니다.

무동력 세계 일주란 어떤 원조도 없이(무원조), 어느 항구에도 정박하지 않고(무기항)

4만km이상 항해하는 스포츠입니다.”

 

김승진 선장은 지난 2014년 10월 19일 당진 왜목항을 출발해 209일간의 무동력 세계 일주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국내 최초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100여 명 남짓하다고 하는데요. 도전하는 것도, 무사히 돌아오는 것도 어느 하나 녹록지 않아 보이는 스포츠입니다. 


이 험난한 모험을 김승진 선장은 그의 나이 54세에 시작했습니다. 그간 만나봤던 모험가들을 떠올려보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20대 초중반에 대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의 두배를 훌쩍 넘겨 떠난 걸 보면 그는 모험가의 DNA를 타고났던 걸까요?

 

“남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사다 주신 책들이 저를 다양한 세상으로 이끌었고, 다큐멘터리 PD를 했기에

저의 호기심을 채우며 스토리텔러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승진 선장의 전직은 KBS의 <도전 지구 탐험대>, <환경 스페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서 활동한 독립 다큐멘터리 PD 입니다. 두만강에서 살아가는 북한 꽃제비나 일본 고베대지진 사건 등을 시청자에게 생생하게 알려주었죠. 오랫동안 방송을 제작한 실력으로 이번 무동력 세계일주를 직접 기록할 수 있었고, <MBC 다큐스페셜>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한참 활발하게 PD 활동을 하다 문뜩 ‘바다로 모험을 떠나야겠다’ 생각했어요.

대학생 스킨스쿠버 전국 회장을 역임했을 만큼 바다를 원래 좋아했기에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다가 필요했습니다.

제 나이 40이었죠.

그땐 무동력 세계 일주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억누르고 살았던 모험이라는 유전자가 깨어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때 이후로 모험에 대한 갈망이 절실함으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아요. ”

 

모험을 결심한 그때부터 당진 왜목항에 서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렸습니다. 어떠한 도움 없이 200일이 넘는 기간을 바다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생존 능력을, 외적으로는 사람을 모으고 자본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항해에서 포기는 곧 죽음이다



 

 

“2014년 10월 19일, 떠나는 배에서 펑펑 울었어요.

떠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힘든 만큼 떠나는 것이 정말 절실했고,

떠난 순간 그 모든 기억들이 스치면서 한 삼일 정도는 누워만 있었습니다.

도착하는 날에도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돌아왔다’와 함께 ‘아~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라는 안도감이었던 것 같아요. ”

 

기본적인 수영법만 익힌다면 바다는 그 어느 곳 보다 안전하다 말하는 김선장. 그는 하루하루가 감동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책 속에만 있었던 유과 적도, 단 한 번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하늘과 바다 한가운데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새가 한 마리 찾아오더라고요.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찾아와서

제가 ‘이리와’라고 이름도 지어주고 몇 개 없는 인스턴트 햄을 그 녀석에게 퍼주었네요.

돌아오는 길에 인도네시아에서 해적을 만났습니다.

사람을 해치는 해적은 아닌 것 같았지만,

만에 하나 이 항해를 못 끝내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꽁꽁 묶어놓은 엔진을 풀었어요.”

 

해적을 만나 목숨이 위협당하는 것보다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다는 김선장은 왜 그토록 완주를 원했던 것일까요? 40에도 50에도 인생의 전환점은 언제든지 다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의문에 김선장은 달라진 눈빛으로 ‘바다에서 포기는 죽는 것이며, 이 항해는 다신 없을 유일한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흘려버리는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합니다. 


“10년을 넘게 준비하다 보니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중간에 부도가 나기도 했고 그나마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아라파니호를 구매했습니다.

또 사람을 모아 떠나기까지 돈도 사람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마음은 당장 떠날 수 있었는데 나머지 준비가 안됐었어요.

정말 힘들게 준비한 만큼, 실패를 하면 저에겐 다시 바다 모험이란 없었을 것입니다.

포기할 만큼 힘든 적도 없었지만 저의 남은 인생이 걸려있기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난 아빠를 왜 특별하다고 하는지 모르겠어!'

 

김승진 선장의 딸은 아빠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다른 아빠들과 다르지 않았고, 처음부터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무동력 세계 일주를 준비할 때도 돌아오고 나서도 특별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소홀히 생각할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하고 싶었고 해야만 살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그게 산이고 하늘이고 일이겠지만 저에겐 그게 바다였어요.

다른 분들처럼 저는 꿈에 대한 도전을 54세에 시작한 것뿐입니다.”

 

 

절실한 사람만이 꿈에 용기 낼 수 있다고 강조하는 김선장이 바다에서 느낀 것은 ‘오롯한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것을 품은 듯 생명 탄생 비밀을 간직한 신비로움을 보고 있으니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동네 작은 강에서도 카누를 타는 등 선박을 이용한 스포츠가 레저로 각광받는데, 아직 한국에서는 특권층의 문화로 여기고 바다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양 문화를 알리는 선봉장이 되고 싶다며 긴 목표를 전하기도 합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정도

제가 바다에 나갈 때 다른 분들도 함께 나가곤 하는데요.

망망대해 덩그러니 던져졌을 때 그 분들도 저처럼 감동을 받습니다.

더 많은 분들에게 이 느낌을 전해주고 싶어요.

제가 강연에 적극적인 것도 사람들에게 바다에 대한 호감을 주기 위해서죠.

호감을 가져야 꿈도 꾸고 도전도 하게 될 테니.”

 

‘큰 모험을 했으니 그만해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 김선장은 다음 도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전의 모험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면 다음은 시간을 걸고 하는 세계대회 출전입니다. 짧게는 68일만에 완주한 기록도 있다고 하니 체력과 정신력 모두 단단히 준비해야 할 듯합니다.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세계 1위도 자신 있습니다.

아직 경비 마련 등 준비 중에 있지만 곧 참가해 보여드릴게요!”



아직도 도전할 바다가 남아있다는 김승진 선장은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가 모험의 시작이랍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모두 한길로만 가고 있었네요. 조금 다른 길도 길이고 도착점이 달라도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통해 보여준 김승진 선장, 그의 아름다운 세일링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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