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망중립성 폐지, 인터넷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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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터넷 정책의 근간인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원칙’이 폐지됩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 14일 표결을 거쳐 3대2로 폐기를 결정한 겁니다. 미국 연방관보에 게재된 뒤 60일이 지나면 폐기가 확정되니까 내년 2월이면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 같은 FCC의 결정으로 미국의 통신사와 IT기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망중립성 폐지’. 그렇다면 과연 우리 인터넷 세상은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요?

 
 
  

전세계 뒤흔든 망중립성 폐지 발표, 도대체 뭐길래? 



망중립성은 그동안 물과 공기처럼 우리 옆에 존재해왔습니다. 망중립성이란 통신사 등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가 인터넷 트래픽을 유발하는 온라인 기업을 차별·차단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입니다. ISP가 특정 온라인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지연시키지 못하며, 자사 콘텐츠 등 특정 콘텐츠를 선호할 수 없게 제한하는 겁니다.


▲ 망중립성을 고속도로에 비유한 이미지로, 오른쪽 고속도로는 망중립성이 폐지된 것을 나타낸다.

통신사는 돈을 더 받는 대가로 일부 플랫폼사업자에게 더 빠르고 쾌적한 인터넷 접속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를 고속도로에 비유하면 도로 관리주체가 차량 종류나 적재중량, 제한속도 등을 제한할 수 없게 하는 원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큰 트럭이나 버스, 무거운 짐을 실은 차량 등에 추가요금을 매기거나 속도제한 혹은 통행금지 조치까지 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ISP가 구글, 넷플릭스 등 인터넷·콘텐츠 기업을 대상으로 사용량, 속도 등에 따라 요금을 차별화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망중립성이 미국에서 공식 채택된 건 불과 2년 전인 2015년입니다. 하지만 망중립성에 관한 논란은 계속 있어왔고, 2008년 커다란 사회 이슈로 불거진 적이 있었습니다. 컴캐스트가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비트토런트의 서비스를 차단시킨 게 시발이었습니다. FCC는 당시 망중립성 원칙에 따라 서비스 차단을 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2010년엔 ISP가 인터넷망을 모두에 공개하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열린 인터넷’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버라이즌 컴캐스트 등 ISP들은 FCC를 연방법원에 제소했고, FCC는 법적 공방 끝에 승소하면서 2015년 2월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한 겁니다.

 

▲ 아짓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출처: FCC)

 

 

하지만 기업 자유를 주장해온 공화당은 망중립성에 반대해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당선되자마자 망중립성 폐지를 주장해온 파이 위원장을 FCC에 앉혔습니다. 파이 위원장은 "우리는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들을 돕고 있다"며 "망 중립성 원칙을 폐지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밝혔습니다.

 

 

  

IT 기업 성장의 밑거름 망중립성, 왜 폐지할까?

 

 

망중립성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 인터넷 기반의 미국 플랫폼.콘텐츠 사업자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들은 통신사업자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엄청난 트래픽을 유발하며 성장했지만 접속료 외의 추가비용은 내지 않아도 됐습니다. 실제 미국 저녁시간 골든타임(9~10시) 인터넷 트래픽의 60%는 넷플릭스 등 6대 사업자가 독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원칙을 폐기하려고 할까요. 그동안 구글 등 인터넷 사업자는 급성장해왔으나 버라이즌 AT&T 컴캐스트 등 통신사들은 매년 수익성이 낮아져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버라이즌 등은 구글 넷플릭스 등이 동영상 유통 등 많은 트래픽을 유발해 망 운영과 투자가 어려운 만큼 이들로부터 요금을 더 받아야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실제 미국 정보통신 회사 시스코에 따르면 2015년 미국 모바일 트래픽에서 동영상 비중은 55%이며 2020년에는 75%까지 비중이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특히 엄청난 데이터가 오가야하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등이 본격화되려면 5G 네트워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입니다. ISP들은 향후 몇 년간 5G 네트워크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동안 과실을 따먹은 구글 등이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구글 등은 망중립성이 없어지면 ISP들이 소비자에게 전달될 콘텐츠에 대한 취사선택, 즉 게이트키핑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반대해왔습니다. 망중립성 폐지가 결정된 뒤 구글은 "우리는 압도적인 대중들이 망중립성 정책을 누릴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며 "다른 크고 작은 망중립성 지지자들과 함께 강력하고 강제할 수 있는 망중립성 보호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망중립성 없는 인터넷 세상, 어떻게 바뀔까?

 

 

▲ 망중립성 폐지에 따른 예상 변화

(자료 출처: 한국투자증권)

 

 

향후 망중립성 없는 인터넷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ISP가 수혜자란 사실은 확실합니다. 데이터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키는 플랫폼 사업자 혹은 일반 사용자에게 추가 요금을 부가할 수 있어서입니다. 고속도로에 통행료를 더 내는 우선차선을 만들어 돈을 버는 식입니다. 특히 5세대(5G) 통신 시대가 본격화되면 자율주행차 IoT 등으로 네트워크가 확산되며 수익은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됩니다.


ISP들은 콘텐츠 유통에서도 유리해집니다. 지난 10여년간 인수합병(M&A)를 통해 컴캐스트가 NBC유니버설을, 버라이즌은 야후와 AOL을 합병해 소유하고 있으며 AT&T도 타임워너와의 합병을 추진중입니다. ISP가 자신의 콘텐츠를 넷플릭스 유튜브 등에 우선해 차별적으로 서비스하면서 판을 흔들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거대 인터넷 기업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것으로 보입니다. 손해란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건 단기적입니다. 또 이들은 충분히 비용을 감당할 수 있고, 그 비용을 소비자 등에 전가시킬 능력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유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차별적 요금제가 시행되면 자금여력이 없는 스타트업이나 중소 기업은 구글 등과 경쟁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구글 등이 독과점을 강화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 소비자들은 어떨까요. 당장은 별다른 변화가 거의 없겠지만, 빠른 속도, 많은 용량을 원하는 소비자의 경우 비용이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ISP가 넷플릭스에 차별적 비용으로 더 빠른 속도를 제공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넷플릭스는 더 빠른 속도를 원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한 더 비싼 요금제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수 있습니다.


싸게 혹은 공짜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생겨날 겁니다. 제로레이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ISP가 콘텐츠 사업자 등으로부터 돈을 받고 특정 콘텐츠를 공짜 혹은 저가에 소비자들이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입니다. 광고나 새로운 서비스 런칭을 원하는 사업자들이 이같은 서비스를 대거 제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망중립성 폐지는 5G 투자를 앞당길 수 있는 요인입니다. ISP들의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5세대 망 투자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파이는 위원장은 “네트워크를 공공재로 취급하는 유틸리티 스타일의 규제가 광대역 투자를 침체시켰다”면서 “5G 네트워크로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자율주행, 원격의료,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IT서비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들 서비스는 엄청난 실시간 데이터를 중심으로 합니다. 특히 자율주행차 원격진료 등은 종래와 달리 지연시간(latency), 통신 안정성, 패킷 손실 최소화 등 높은 품질의 통신 네트워크를 필요로 합니다. 망이 느려지거나 중단되는 등 통신망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원격의료나 자율주행차의 경우에는 소비자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으려면 통신망이 5G로 빨리 고도화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망중립성은 지금의 거대 IT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자, 4차 산업혁명의 뿌리였는데요. 이미 엄청난 성장을 이룬 IT공룡들은 망중립성 폐지에 큰 타격이 없겠지만, 스타트업이 성장하기엔 악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 또한 비용 부담이 생길 것이고요. 하지만 앞으로 데이터양은 끊임없이 늘 것이고, 이에 따른 빠른 인터넷 속도가 계속 요구될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급변하는 IT시대에 망중립성 폐지 결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5G시대를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인터넷 세상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더욱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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