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에도 반도체가? 특수 반도체의 세계

TECH/반도체 Insight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전자부품이 들어가는 곳에 반도체가 없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손가락 크기의 USB 메모리에서부터 비행기, 잠수함, 심지어 인공위성에 이르기까지 반도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데요. 오늘은 각종 산업에 쓰이는 반도체는 물론 우주•항공 등에 쓰이는 특수한 기능을 가진 반도체를 확인해보겠습니다.




_ 우리 삶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반도체



우리 일상 속의 다양한 제품에 반도체가 필수로 사용되는 것은 단순히 전자부품이 필요해서 그런 것으로 보이겠지만,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컴퓨터 빠른 계산 능력이 필요해서 그렇죠. 


간단하게 승강기를 떠올려보겠습니다. 과거 기계식 승강기는 탑승자가 일일이 문을 열거나 닫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뤄집니다. 버튼을 누르면 승강기가 문이 열리거나 닫히고 원하는 층으로 이동할 수 있죠.  


최근 선보이는 모델은 사람이 출입문 근처에 있으면 감지하고 발바닥 모양의 그림에 발을 가져다 놓으면 자동으로 버튼을 눌러줍니다. 이것은 승강기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손에 물건을 들고 있을 때 유용하죠. 이런 복잡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산기가 필요하고 이런 역할을 반도체가 해냅니다. 각 층마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을 때 어떤 알고리즘으로 작동해야 하는지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조금 더 넓게 생각해보겠습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계산하려면 데이터를 입력해야겠죠. 그리고 입력된 데이터를 처리(프로세싱)하고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런 ‘입력→처리→출력’이 컴퓨터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죠. 


그리고 컴퓨터에 입력된 데이터를 계산하려면 트랜지스터를 내장한 반도체의 효율이 높아야 합니다. 굳이 반도체가 아니더라도 진공관 등을 이용하여 계산을 할 수는 있으나 덩치가 엄청나게 커지겠죠. 우리가 일상에서 반도체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트랜지스터의 등장 덕분이고, 목적이나 사용처에 따라 중앙처리장치(CPU)나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혹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의 이름을 붙이지만 따지고 보면 트랜지스터를 잔뜩 품에 안은 칩(Chip)의 일종입니다.




_ 비어있는 도화지, FPGA



이렇게 우리 주변에 반도체가 내장되지 않은 전자제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산업, 특히 안전이 중요한 분야는 특수한 기능을 갖춘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프로그래머블반도체(Field-Programmable Gate Array, FPGA)입니다. AP와 같은 반도체는 한번 설계해서 안정화에 들어서면 대량 생산에 들어가는데요. 초기에는 고객이 특정 용도의 AP를 주문하면 이에 알맞게 설계에 들어가는데 이를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이라 부르죠. 이후 주문된 ASIC을 여러 고객이 사용하게 되면 ASSP(Application-Specific Standard Product)라고 이름이 바뀝니다.


▲ 쓰임새 따라 얼마든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 FPGA



ASIC나 ASSP와 달리 FPGA는 용도에 따라 얼마든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입니다. 일종의 도화지라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사용자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죠. AP는 물론이고 MCU나 디지털신호 처리장치(DSP)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동안 FPGA는 업그레이드가 잦은 통신이나 보안이 각별히 요구되는 군용 장비를 중심으로 쓰였습니다. 최근에는 자동차는 물론 서버,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적용 분야가 다양해졌는데요. 그만큼 가격 차이도 심해서 싸게는 몇천 원, 비싸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FPGA의 장점을 AP와 결합한 일종의 하이브리드가 트렌드입니다. 일부 업체는 FPGA의 유연성과 신속성, ASSP의 저전력 및 기능 최적화 특성만 골라서 만든 ‘pASSP’라는 반도체를 공급하기도 하죠.


하지만 사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FPGA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반도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는 반도체 성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한데요. 사용하는 반도체는 큰 차이가 없지만, 기초설계와 몇 가지 특별한 제조과정을 통한 안정성과 내구성 확보에 더 주력하고 있죠. 자동차도 이런 반도체가 쓰이는 분야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동차용 CPU는 목적에 따라 크게 파워트레인, 인포테인먼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포테인먼트야 스마트폰의 그것과 큰 차이는 없지만 파워트레인은 조금 다릅니다. 


CPU와 각종 반도체를 모아놓은 부품을 ECU(Electronic Control Unit)라 부르는데, ECU는 보통 연료 분사와 점화 시기와 같은 엔진의 핵심 기능을 제어합니다. 예전에는 엔진 구조가 단순하고 반도체와 같은 전자기기보다 기계 부품이 많이 필요해 설사 CPU를 사용하더라도 4비트나 8비트 제품을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배기가스 규제가 엄격해지고 엔진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ECU에 장착된 CPU도 성능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회사나 모델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는 보통 32비트 CPU를 탑재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차에 쓰이는 CPU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베스트셀러는 단연 모토로라 MC68000과 히타치 SH 시리즈입니다. 모토로라 MC68000은 1979년 개발된 16비트 CPU로 트랜지스터 6만 8000개를 집적했죠. 당시만 해도 최신 PC에 쓰이던 고가의 반도체였습니다.


▲ 실제 우주왕복선에 쓰인 특수 반도체가 장착된 기판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항공에 사용되는 CPU는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범용 제품이 사용됩니다. 베스트셀러 CPU를 꼽자면 RCA1802와 RAD6000, 80386을 들 수 있는데요. RCA1802는 우주탐사선 파이오니아 10호와 11호, 보이저 1호, 2호, 바이킹, 우주왕복선, 인공위성에 두루 쓰인 8비트 CPU로 1975년 인터실이 만들었습니다. 전력소비량이 적고 가혹한 환경에서도 작동이 가능해 우주왕복선, 우주탐사선 등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_ 범용 반도체, 방사선 처리 거쳐 특수하게 탄생



물론, 특수 반도체라고 해서 딱 하나만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환경이죠. 특수 반도체가 쓰이는 장소는 매우 가혹한 경우가 많습니다. 온도가 아주 낮거나 높고 진동과 소음, 분진, 방사선 등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언제든지 수리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안정성을 높여야만 합니다. PC나 스마트폰이 이미 64비트 CPU를 사용하고 있지만 특수 반도체는 16/32비트가 일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비용으로 1개 이상의 CPU를 마련해두기도 하죠.


▲ BAE시스템의 RAD750

특수 반도체는 가혹한 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방사선 처리와 함께 각종 차폐 등의 기능을 덧씌운다. 



환경 가운데서도 반도체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방사선입니다. 우주개발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품질 반도체를 몇 개 골라서 지속적으로 방사선을 쬐어줍니다. 더불어 방사선에 대한 내성을 키워서 가장 잘 버티는 몇 개를 골라 패키징을 하죠. 패키징 자체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금, 백금과 같은 고가의 희귀금속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국 방위산업체인 BAE시스템이 만든 RAD 시리즈가 유명한데요. 위에서도 잠시 언급된 RAD6000을 비롯해서 RAD750이 유명합니다. 각종 우주탐사선과 우주왕복선, 인공위성에 널리 쓰이고 있는 베스트셀러 CPU이죠.


방사선이 반도체에 들어오면 절연체에 전하가 축적되면서 트랜지스터가 설계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회로는 켜져야 하는데 꺼지고, 반대로 꺼져야 하는 상황에서 켜지기도 합니다. 방사선은 그 자체로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결국에는 칩을 태워버리죠. 고고도 상공이나 우주에서는 다양한 방사선이 쏟아져 내리므로 이를 효과적으로 막아내는(차폐) 기술이 필수적입니다. 우주선과 인공위성에 쓰이는 반도체 위에 황금색 금속이 덕지덕지 붙어있는데 이게 바로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합니다.


알파선부터 감마선까지 방사선에서 자유로운 반도체는 없습니다. 사실 X선은 고사하고 알파선도 어렵게 막아내는 수준입니다. 감마선은 그나마 덜하다지만 어떠한 반도체도 방사선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도 마찬가지인데요. 일본 도호쿠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큰 문제가 발생했지만 복구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강력한 방사선으로 인해 사람은 물론 로봇도 1시간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각종 전자부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죠.




_ 쓰임새 넓어진 특수 반도체



앞으로 특수 반도체는 더 이상 일정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정된 자원의 지구를 떠나 인류는 우주로 진출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반도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죠.


올해 SK하이닉스가 진행했던 한국반도체학술대회에서 각 기업의 고위 임원이 눈여겨본 논문도 방사선에 강한 반도체였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 논문(CMOS 0.18㎛ 내방사선 n-MOSFET 구조 연구 및 분석)에 따르면 0.18㎛ 상용 n-MOSFET의 누적피폭량(TID) 효과에 의한 누설전류(터널링)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p+레이어와 p-act 레이어를 포함하는 내방사선 n-MOSFET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구조를 보니 패키징처럼 외부가 아닌 내부에 차폐를 두르는 형태입니다. 덕분에 절연 산화막 생성을 억제해 누설전류를 최소화, 레이아웃 변형을 통한 소자의 내방사선 특성을 나타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좋던 싫던 반도체가 탄생한 순간부터 인류는 반도체와 함께 먹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됐습니다. 특수 반도체는 산업 현장을 넘어서서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으며 파급력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큰 기술의 발전이 이뤄질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공유하기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1 ···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 2186


티스토리 툴바